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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icon[영남지리답사] 남평문씨 세거지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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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영남지리답사] 남평문씨 세거지를 다녀와서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답사를 떠나며...
Ⅱ. 남평문씨본리세거지와 인흥서원에 대하여...
1. 인흥마을과 남평문씨의 유래
2. 광거당(廣居堂)
3. 수봉정사(壽峯精舍)
4. 인수문고
5. 인흥서원(仁興書院)
Ⅲ. 답사를 마치며...

본문내용

1. 인흥마을과 남평문씨의 유래
남평문씨의 중시조로 알려진 삼우당(三憂堂) 문익점(文益漸) 문익점(文益漸, 1331~1400). 본관은 남평(南平). 고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고 1363년 좌정언(左正言)으로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원(元)나라에도 갔었다. 돌아올 때 붓대속에 목화씨를 감추어 가져와, 이를 전국에 전파해 유명하다. 1440년 세종이 영의정을 추증하고 강성군(江城君)으로 추봉했다.
의 후손이 대구에 입향한 것은 대체로 500년 전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이 곳 인흥에 자리를 잡은 것은 그의 18세손인 인산재(仁山齋) 문경호(文儆鎬, 1812~1874)때이다. 그는 문씨만의 마을을 만들 것을 계획하고 원래 고려의 대찰(大刹)인 인흥사가 있었던 자리에 터를 잡아 오늘의 인흥마을을 새로 열었다고 한다.
세거지에 최초로 건립한 건물은 재실 용호재(龍湖齎)로 현재 광거당이 있는 곳이다. 저택이 들어선 것은 1800년대 후반으로 처음에는 초가로 시작했으나 그 후 100년에 걸쳐 지금의 세거지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남평 문씨 집안은 탁월한 경제 능력과 학문을 함께 갖춘 뛰어난 인물들을 배출하였다. 문경호의 손자 후은(後隱) 문봉성(文鳳成)과 그의 아들 수봉(壽峯) 문영박 문영박(文永樸, 1880~1930). 인흥에 터를 잡아 마을을 세운 경호공의 증손으로, 학자이며 경륜가로 명망이 높다. 수만의 전적(典籍)을 모아 학문 진흥에 이바지하였으며, 조국의 광복운동에도 크게 기여해 오늘의 세거지를 있게 한 중추적 인물이다. 돌아가시 후에는 상해 임시정부로부터 대한국춘추주옹(大韓國春秋主翁)으로서의 조문(弔文)도 있었다.
(文永樸)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현재 70여채의 기와집이 한울 안에 정연히 들어서 있는 이 마을은 건축 연대가 200년 미만이지만 전통적인 영남지방 양반 가옥의 틀을 지키고 있으며, 세거지 구성과 주위 경관의 조화는 어느 곳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마을이라 하겠다.

2. 광거당(廣居堂)
이전에 있었던 용호재를 헐고, 1910년 후은(後隱) 문봉성(文鳳成) 부자가 다시 지은 재실(齋室)이다. 옛 전통 구도를 살린 당당한 건물로서, 문중 자제들의 수학공간이며 학문을 논하는 장소로 쓰였다. 광거당은 본래 재실, 곧 제사를 지내려고 지은 집이지만, 공거당 내에 1만권의 책을 비치한 만권당이 설치된 뒤로 전국의 문인과 학자들이 방문하여 책을 보고 학문과 예술 그리고 조선의 앞일을 걱정하고 토론하는 문화공간으로 사용되었다.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낮은 기와토담인 헛담은 특히 광거당 건축미의 백미이다.







<사진-1 광거당>

3. 수봉정사(壽峯精舍)
세거지 정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1936년 수봉선생을 기리기 위해 지은 정사로 갖가지 모임의 장이 되고 있다. 광거당과 더불어 대표적인 전통 목조건물로 평가받고 있으며, 잘 가꾸어진 아름다운 정원을 자랑한다. 뒤편으로 나있는 문을 나서면 마을로 연결되는 길로 나서게 된다. 수봉정사를 들어가려면 대문을 지나야 하는데, 단체손님이 올 경우에는 큰 대문을 열고, 소수일 경우에는 큰문은 빗장 걸고 작은문을 열어놓는다고 하였다. 이 문의 빗장은 거북이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이 빗장을 풀려면 감춰져 있는 거북이 꼬리를 밀어 넣고 난 후에 잡아당겨야 가능하다고 하였다. 선조들의 미적 감각을 살펴볼 수 있는 부분이다.




<사진-2 수봉정사>

4. 인수문고
2만여권의 국내외 전적(典籍)과 문중의 문건 등을 소장하고 있는 국내에서도 보기 드문 문중문고(門中文庫)이다. 처음에는 소규모이던 인수문고를 1980년 초에 서고와 서사를 새로 지으면서, 명실공히 민간의 대표적인 문고로 자리 잡았다. 또한 이웃에, 도서의 열람을 위한 거경서사(居慶書舍)도 따로 꾸며 놓았다.
현재 인수문고에서 소장하고 있는 책 종류가 약 8500 여 권에 달한다. 보통 고서의 경우에는 1 책이 2-3 권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약 2만 권에 해당한다.
그래서 보통 만권당(萬卷堂)으로 부르기도 한다. 우리나라 서원 가운데에서 가장 많은 책을 보관하고 있는 곳이 안동의 도산서원으로 알려졌는데, 도산서원이 약 4400 권을 보관하고 있으므로, 인수문고는 도산서원보다 거의 2 배 이상 책을 보관하고 있는 셈이다. 인수문고는 장서의 양뿐만 아니라, 어느 책도 책의 권수가 하나도 빠지지 않은 낙질(落帙)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바로, 어느 책도 낱권이 아닌 전집으로 완벽히 갖추고 있는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문중문고이다.

태그 남평문씨, 남평문씨 세거지, 인수문고, 인흥서원, 광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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