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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Ⅰ. 서론 Ⅱ. 화북 아편정책의 성격 Ⅲ. 화북과 만주국 아편정책의 비교 참고자료 |
본문내용 |
Ⅰ. 서론 1937년 중일전쟁을 통해 중국지역을 점령한 일본은 주요 아편소비지역인 화북지역에서도 기존 식민지에서 실시해왔던 아편정책을 추진하였다. 특히 화북의 아편정책에는 여러 가지 조건의 유사성으로 만주사변기 만주국의 아편정책이 많이 차용되었다. 두 지역의 유사성으로는 우선 광대한 영역과 수많은 아편흡연자가 존재한다는 점을 둘 수 있다. 또한 삼면이 육지로 연결되어 있어 밀매를 단속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인력과 경비가 든다는 점이 유사하였다. 그러나 만주사변기 만주국 아편정책의 경험을 바탕으로 유사한 아편제도가 공포되어 실시되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외형적으로 두 지역이 비슷한 조건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화북지역의 아편정책이 실패로 돌아간 이유는 무엇일까? Ⅱ. 화북 아편정책의 성격 화북지역의 아편정책은 본 지역의 재원확보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의 아편정책 전개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었기 때문에 빠른 정책의 성립이 요구되었고 본 지역의 사정만을 고려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중일전쟁 발발과 함께 중국 화북을 점령한 일본은 이 지역에서도 역시 점금주의를 명목으로 한 수입위주의 아편정책을 저개시켜 나갔다. 이 지역은 아편의 주요 소비지였고 일본에 있어 전략적으로 중요한 만주국 및 몽강정권과 인접해 있었다. 따라서 화북지역의 아편정책은 본 지역의 재원확보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그들 세력권에 대한 아편정책 전개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중요시 되었다. 그 결과 일본의 점령지 유지 및 침량전쟁의 재창출과 맞물려 시행될 수 밖에 없었다. 일본은 중국지역에서 아편정책을 수행하면서 대외적으로 늘상 아편근절을 목적으로 아편정책을 실행하는 것이라고 강조해 왔지만, 화북지역에서도 실상은 역시 재정수입과 관련이 깊었다. 즉 일본은 화북 아편정책에서 이 지역의 아편근절은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았다. 단지 아편근절을 명목으로 한 재정수입 확보에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