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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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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배경

Ⅲ. 대장정 과정
1. 장정 초기
2. 준의회의
3. 대도하~대설산
4. 장정의 완료

Ⅳ. 장정에서 살펴볼 사항들
1. 군벌과의 전투
2. 농민에 대한 홍군의 행동들
3. 이민족들
4. 홍군 지도부의 도덕성

Ⅴ. 대장정 기간의 모택동의 당권 장악
1. 대장정 초기의 모택동의 당내 입지
2. 준의회의를 통한 당권의 변화
3. 찰서회의를 통한 당권의 변화
4. 반장국도 투쟁을 통한 전당적 차원으로 모택동의 권력 확대


<참고문헌>

 
본문내용
Ⅱ. 배경

1931년 11월 공산당은 강서성(江西省) 서금(瑞金)에 중국소비에트공화국을 수립한다. 1928년 북경을 쉽게 얻어 북벌을 완료한 (다만 군벌들의 협력 하에서) 국민당의 입장으로 보아 공산당은 토벌해야할 새로운 정적(政敵)이었다. 역대 중국의 안녕이 외세의 침략보다는 내부 분열에 더 좌우된다고 생각했던 장개석은 1931년 만주사변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선안내(先安內) 후양외(後攘外) 정책으로 일본과의 충돌을 피하면서 공산당 토벌에 전력을 가한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당시 북벌의 완성을 이룩한 국민당 치하의 중국이 결코 과거와 같은 일원적 혹은 통일적 국가 체제가 아니었다는 점이다.(물론 과거에도 역시 개별인신적 황제지배체제가 국내 구석구석까지 효과를 미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러한 것은 통신기술이 발달한 오늘날에 와서야 일정 수준으로 작동한다. 여기서 말하는 통일적 국가 체제는 국가 권력이 모든 인민을 장악한 체제가 아니라 정치적 안정이 이루어진 체제를 말한다.) 우선 공산당 국가가 성립했다. 거기에 더하여 군벌들 역시 통치권을 완전히 위임한 것이 아니다. 북벌의 전개과정에서 국민당이 우선적으로 국민혁명군 측으로 들어와 있던 군벌들의 점유지역에 대한 기득권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허나 북벌의 달성 이후 국민당은 북벌 이후 군대를 중앙의 통제 하에 두기 위한 재편을 단행한다. 이 과정에서의 반발로 1930년 중원(中原)전쟁이 일어난다. 물론 이 전쟁의 승자는 국민당이었으나, 그것은 자신의 존재가 우위에 있다는 것을(북벌과정에서보다는 다소간 더 높은 수준의) 보여주는 것이지 여전히 단일한 형태의 국가체제는 아니다. 그에 대한 자료는 지방 정부에 국민당이 양도한 토지세에서 알 수 있다. 당시 사회는 농업부문이 국내 생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것은 농촌 경제의 끔찍한 파괴를 낳았고, 이후 농촌 계급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2024-04-20 05:00:12 211.234.109.229/data/data_scrap.html 최근 수정일: 2019-11-06 15:55:18. 총퀴리수 : 3 총쿼리시간 : 0.00202 [0.00038]/[ DB:report] select count(*) AS CNT from psCart where SessNum='20240420050011387803'; [0.00042]/[ DB:report] SELECT seq FROM psRlist WHERE rpID=710727; [0.00122]/[ DB:report] SELECT * FROM psReport WHERE rpID=71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