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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엽의 민족정신과 『금강』을 통해 본 동학사상의 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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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1. 연구 목적
2. 연구사 검토
3. 연구 방법

Ⅱ. 본론
1. 「금강」, 그 암울 했던 1960년대의 현실
2. 동학농민혁명의 詩化 - 내용을 중심으로
3. 「금강」의 인물 구성 양상 - 전봉준과 신하늬를 중심으로

Ⅲ. 맺음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1. 연구 목적

1960년대의 시 문학사를 개관할 때 4.19혁명의 실패와 5.16군사 쿠테타로 말미암아 다수의 시인들이 자기 목소리를 잃고 현실의 삶과는 무관한 단순한 순수시 지향이나 혹은 수사학적 기교로 치우친 시를 쓴데 반해 한국문학을 민족, 민중문학으로서 자리를 잡게 한데 크게 기여한 시인의 중심에 신동엽을 내세울 수 있다. 신동엽은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로 등단을 하였고 4.19혁명과 5.16 쿠테타라는 거대한 역사의 일부분을 살아갔던 시인으로 1969년 간암으로 요절하기까지 10여 년 밖에 안되는 짧은 문단활동을 했다. 신동엽의 시세계는 작품을 중심으로 3기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장시이자 그가 등단했던 작품인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1959)를 담은 시집『아사녀』(1963)까지를 들 수 있고, 두 번째 단계로 시집 『아사녀』이후 작고할 때까지의 모든 작품, 그리고 마지막으로 본고에서 중심으로 다루어 질 작품인 서사시「금강」(1967)을 들 수 있다. 또한 그는 시극동인회의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시극인 「그 입술에 파인 그늘」을 써서 국립극장에서 상연하기도 하였고, 오페레타「석가탑」 전 5경을 씀으로 해서 드라마 센터에서 노래로 만들어져 상연하디고 하였다. 이러한 신동엽의 작품 활동을 볼 때, 단순히 시 이외의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형성하였다고 보기 보다는 시인으로서의 “민족 공동의 운명적인 벽 앞에 선 우리에게 민족 공동의 노래가 있어야 한다.”라는 대전제에서 출발한 그의 의식의 표현 양식에 대한 적극적인 모색으로 여겨진다.
그가 살아갔던 당대의 현재적 삶을 개선하고 나아가 미래의 전망을 이끌어 나가려는 진취적인 입장에서 보았을 때, 신동엽의 시정신은 4.19를 겪으면서 혁명시 「아사녀」를 기점으로 1961년 발표 되었던 시론인 <시인 정신론>에서 구체적으로 표현되었다고 본다. 그가 역사를 바라보는 인식은 그 후 발표되었던 대표적인 참여시인 「껍데기는 가라」에서 집약적으로 나타나면서 서사시 「금강」에 이르러 동학농민혁명과 3.1운동, 그리고 4.19혁명을 하나의 줄기로 연결하면서 보다 분명히 드러났다. 그가 시인으로서 살아갔던 삶에서 가장 절정기에 창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 「금강」은 그의 마음속에 품고 있던 민중에 대한 의식에 대한 결정체라고 할 수 있으며, 독재정권이라는 부당한 언어아래 피로 물들어야 했던 1960년대의 참담한 현실 속에서 우리 민족의 언어로 예전의 아름다웠던 공동체적 삶을 추구했던 그만의 문학적인 면모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24-04-25 23:24:13 211.234.109.229/data/data_scrap.html 최근 수정일: 2019-11-06 15:55:18. 총퀴리수 : 3 총쿼리시간 : 0.00241 [0.00055]/[ DB:report] select count(*) AS CNT from psCart where SessNum='20240425232413397478'; [0.00048]/[ DB:report] SELECT seq FROM psRlist WHERE rpID=698959; [0.00138]/[ DB:report] SELECT * FROM psReport WHERE rpID=6989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