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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 기자 조선을 통해 본 고조선(예맥)과 한민족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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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기자조선과 기자동래설의 문제점
2. 기자조선과 진국(마한)의 관계
Ⅲ. 결론
Ⅳ. 참조 문헌 및 주석
 
본문내용
한때 기자동래설(箕子東來說)과 관련, 기자 조선의 실존 여부가 사학계의 뜨거운 관심사로 떠올랐던 적이 있다. 본문을 이해하는데 핵심 키워드가 될 기자(記者)라는 인물은 은(殷)나라 28대 군주 문정(文丁)의 아들이자, 은나라 마지막 왕이었던 주왕(紂王)의 숙부되는 인물로서, 기원전 1046년, 은나라가 주(周)나라의 침공을 받아 멸망하자 은나라 유민들을 이끌고 북쪽으로 이주했다고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성품이 어질어 폭군 주왕 밑에 있는 동안에도 간언을 아끼지 않아 유배 신세가 되었다. 은나라를 멸망시킨 주(周)나라 무왕(武王)은 기자를 풀어주고 그를 찾아가 정치에 대해 물었는데, 이때 기자가 <홍범구주(洪範九疇)>를 전해주었다고 한다. ‘홍범구주’는 중국 전설상의 왕조인 하(夏)나라 우(禹) 임금이 정했다는 정치 도덕의 아홉 가지 원칙으로서, 기자에 의해 최초로 집필되어졌다.

<중 략>

기자조선과 기자동래설로 말할거 같으면 기자가 은나라 멸망 직후 동쪽으로 가서 고조선을 점령하고 기자 조선을 세웠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단군조선(檀君朝鮮)'-'위만조선(衛滿朝鮮)'으로 이어지는 고조선 역사의 중간에 ‘기자조선(箕子朝鮮)‘이 존재하는 것이다. 중국 학계 일부에서는 한때 고조선의 역사를 자신들의 문화권인 중화권에 편입시킬 의도로 기자조선의 실체를 강하게 어필하였으나, 한국 사학계와 정통 중국 사학계를 중심으로한 최근의 연구 결과로 미루어 기자 조선의 실체는 이미 허구임이 판명난지 오래이다.

<중 략>

한편 <삼국지(三國志)>로 말할거 같으면 기원후 280년, 진(晉)나라의 학자 ’진수(陳壽, 233 ~ 297)’가 저술한 책으로, 준왕이라는 인물이 활동했다는 시점(BC 194년, 즉 위만에게 축출당하는 시점)에서 무려 500여년이나 지난 후에 쓰여진 책이다. 그보다 먼저 고조선과 진국과의 관계를 다룬 사서에서는 그 어디에도 준왕이라는 인물이 등장하지 않으며, 준왕이 진국으로 남천해서 마한(馬韓)을 건국했다는 말 역시 나오지 않는다. 고조선과 진국과의 관계가 처음 등장하는 사서는 기원전 2세기경, 위만과 거의 동시대 인물인 사마천이 지은 <사기>로서, 준왕이 등장할 법한데 준왕이라는 인물은 그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2024-04-19 22:22:48 211.234.109.229/data/data_scrap.html 최근 수정일: 2019-11-06 15:55:18. 총퀴리수 : 3 총쿼리시간 : 0.00237 [0.00055]/[ DB:report] select count(*) AS CNT from psCart where SessNum='20240419222248801650'; [0.00047]/[ DB:report] SELECT seq FROM psRlist WHERE rpID=690927; [0.00135]/[ DB:report] SELECT * FROM psReport WHERE rpID=69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