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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고전의 이해 공통] 교육고전의 이해 교재에 소개된 고전 중 1권을 선택하여 읽고, 독후~_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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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 책을 선택한 이유

Ⅱ. 본론
- 주요 내용

Ⅲ. 결론
- 감상 소감

 
본문내용
Ⅱ. 본론

목민심서는 조선 정조, 순조 때의 실학자이며 학자인 다산 정약용의 저술로서, 지방의 수령들이 목민관으로서 마음에 새겨두고 지켜야 할 일들을 조목조목 자세하게 기록해놓은 책인데, 40세 이후에는 유배가 풀린 뒤에도 강진에서 머물면서 저술에 몰두하여 다산이 57세인 순조 18년(1818)에, 당시 유배지였던 강진의 다산초당에서 완성한 것이다.
목민이란 백성을 기른다는 뜻이며 심서란 목민할 마음은 있으나 몸소 실행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밝힌 다산은 항상 민생을 걱정했으며 이 책(목민심서)에 제시된 개혁안이 시행되기를 갈망했다. 정약용은 지방관이었던 아버지 정재원의 임지를 따라다니면서 견문을 넓혔고 자신도 33세 이후 경기도 암행어사와 지방 수령직을 역임하면서 지방 행정에 대한 산 체험을 하였다. 이 목민심서는 그의 수많은 저술 가운데 ‘경세유표’, ‘흠흠신서’와 함께 대표적인 경세서 중의 하나로 총 48권 12편 72조로 되어있다. 당시 목민관들이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고 백성들의 고통을 돌보지 않으며, 자신의 이익추구에만 급급한 것을 개탄하여 ‘경세유표’의 저술을 중단하고 이 책을 짓게 되었던 것이다. 다산의 백성에 대한 사랑은 각별해서 내직으로 있을 때는 제도 개혁과 민생 향상에 대한 논論, 책策, 의議 등을 많이 올렸고, 경기 암행어사로 있을 때는 지방 행정의 문란과 기아에 허덕이는 백성의 고통을 직접 보았으며, 곡산 부사로 나가 수령노릇도 해보았다. 또한 유배지에서 수령과 아전의 협잡(그릇된 짓으로 남을 속임), 민간의 고통을 직접 듣고 보았으므로 당시의 현실에 대해 준엄하게 비판하고 백성에 대해서는 따뜻한 애정을 보일 수 있었다.
원문 중 인상 깊은 한 부분을 발췌 해보았다.

(원문) 他官可求나 牧民之官은 不可求也니라. (강 부분에 해당 )
타관가구나 목민지관은 불가구야니라.
(해석) 다른 벼슬은 다 구해도, 목민의 벼슬은 구해서는 안 된다.
(목 부분 : 해설) 윗사람을 섬기는 자를 백성이라 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자를 사라 한다. 사란 벼슬살이 하는 사람이니, 벼슬살이 하는 자는 모두 백성을 다스리는 자들이다. 그러나 중앙의 관원은 왕을 받들어 모시는 것을 직분으로 삼거나 각 기관의 직무를 맡아 지키는 것을 직분으로 삼기 때문에 삼가고 조심하면 대개 죄가 되고 뉘우칠 일은 없을 것이다. 오직 수령만은 만민을 다스리는 자로서, 하루에 갖가지 일을 처리함이 임금과 같아서, 그것의 크고 작음만 다를 뿐 처지는 실로 같은 것이다. 이런데도 어찌 스스로 구할 수 있겠는가. 수령 노릇의 어려움은 옛날 공후보다도 백 배나 더하니, 이 어찌 구할 수 있는 것이겠는가. 비록 덕망을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위임이 없으면 하기 어렵고, 하고 싶은 뜻이 있다 하더라도 명철하지 못하면 하지 못한다.
2024-04-25 07:54:52 211.234.109.229/data/data_scrap.html 최근 수정일: 2019-11-06 15:55:18. 총퀴리수 : 3 총쿼리시간 : 0.00259 [0.00059]/[ DB:report] select count(*) AS CNT from psCart where SessNum='20240425075452733839'; [0.00055]/[ DB:report] SELECT seq FROM psRlist WHERE rpID=681362; [0.00145]/[ DB:report] SELECT * FROM psReport WHERE rpID=6813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