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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사의 이해-조선궁궐을 통해 바라본 일제의 만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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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목차 >

1. 서론

2. 궁궐의 축소
1) 창덕궁
2) 창경궁
3) 경운궁
4) 경희궁

3. 상징적 의미로서 민족의 얼 죽이기

1) 율곡로
2) 경운궁 돌담길
3) 경희궁 지하벙커
4) 일본은 왜 그토록 조선의 얼을 죽이려 했는가?

4. 경운궁을 통해서 본 고종의 발자취

1) 대한제국과 경운공
(1) 근대국가의 틀 마련
(2) 국난극복의 구심점
(3) 근대국가 건설을 향한 고종의 의지: 대한문, 중화전
2) 일제 침탈의 흔적들
(1) 단층의 중화전
(2) 선원전과 터의 해체
(3) 경운궁의 공원화

3) 경운궁의 근대사적 의의
(1) 항일의 의지
(2) 고종에 대한 역사적 재인식

5. 결론
 
본문내용
2)창경궁
조선의 궁궐 중 하나인 창경궁은 일제 이후 사람들에게 창경원(昌慶苑)으로 더 잘 알려져 있었다. 창경궁은 일제에 의해 가장 처참하게 유린당한 궁궐로써 뼈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사진 2. 춘당지
일제는 순종을 위로한다는 명목을 앞세워 선인문 보루각터에 동물원을 짓고, 곰, 호랑이, 사슴, 공작, 타조, 낙타, 원숭이 등 각종 짐승과 새들을 사육하기 시작했고 춘당대 지역에는 식물원을 설치하는 공사를 시작하였다. 일본인이 좋아하는 벚나무를 잔뜩 심어 둠과 동시에 박물관• 동물원• 식물원을 통칭하여 창경원이란 이름을 명명하기에 이른다. ‘원’이란 사냥이나 야유 등 놀이를 하는 곳이라는 뜻으로, 한 나라의 궁궐을 일개 오락시설로 변화시키고 일반민들이 거침없이 왕족의 거주지를 들락거리게 함으로써 일제가 조선 왕조의 위엄을 훼손시켰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창경궁 내의 춘당지 또한 일제에 의해 유흥을 위한 장소로 변모하게 된다. 춘당지(春塘地)는 원래 연못으로 그 주변에 왕이 직접 농사를 지어보면서 농정을 실피기 위한 논이 있다. 일제는 이 논을 연못과 이어 붙여서 큰 못을 만든 후 배를 띄워 뱃놀이를 즐기고 그 주변에 케이블카를 설치하기도 하였다.

3)경운궁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덕수궁(德壽宮)이라는 이름은 궁궐의 이름이 아니었다. 퇴위한 고종에게 붙인 궁호(宮號)로써 ‘덕수’라는 이름은 물러난 왕에게 덕을 누리며 오래 사시라는 뜻으로 올리는 일종의 보통명사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덕수궁의 원래 이름인 경운궁으로 그 명칭을 정정하는 것부터 경운궁의 얘기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경운궁은 일제 강점기의 역사를 함께한 궁궐이라 할 수 있겠다. 1896년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서 환궁하면서 경운궁을 중건하였다. 경운궁 주변은 1880년대에 이미 서양 여러 나라의 공사관 부지로 떼어주었기 때문에 이리저리 잘려 나간 모양이었다. 또한 1904년 역시 일제의 방화로 추정되는 큰불로 인해 중화전, 즉조당, 석어당 등 주요 건물 들이 소실되었다. 혼란한 정국 속에서 소실된 건물들의 복구는 원활히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2024-03-29 15:31:17 211.234.109.229/data/data_scrap.html 최근 수정일: 2019-11-06 15:55:18. 총퀴리수 : 3 총쿼리시간 : 0.00329 [0.00074]/[ DB:report] select count(*) AS CNT from psCart where SessNum='20240329153117641729'; [0.00071]/[ DB:report] SELECT seq FROM psRlist WHERE rpID=552460; [0.00184]/[ DB:report] SELECT * FROM psReport WHERE rpID=5524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