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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한국정치사]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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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이런말이 있다. “남자는 영원히(그리고 본질적으로)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 또 이런말도 있다. “가부장 좌파 마초”. 그렇다면 생물학적으로 남자이고, 나름대로 진보적 입장을 흉내라도 내보려고 하는 나에게 있어, 페미니즘은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가치인가,라는 물음이 뒤따른다. 남성 진보주의자에게 있어 페미니즘은 영원한 아킬레스건 인가. 이 물음을 바꿔 말하면 페미니스트들에게 있어 진보의 가치는, 즉 계급문제는 언제나 젠더문제보다 하위의 가치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러한 복잡한 생각 속에서 나는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을 집어 들었다. 평상시 호감을 가졌던 박노자의 책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비호감’인 페미니즘 관련 책을 리포트 과제로 선택했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하나의 ‘도전’이었다. 그리고 이 ‘도전’은 나에게 ‘여성주의는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닌 남성에게, 공동체에, 전 인류에게 새로운 상상력과 창조적 지성을 제공’한다는 하나의 깨달음을 주었고, 또 다른 세상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었다.
언젠가 ‘진보’란 무엇인가? 라는 의문을 가졌을 때, 누군가가 내게 “진보는 불편한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또 다른 사람은 “진보는 소수자와 자신의 위치를 바꾸어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정희진은 이 책에서 “여성주의를 아는 것은 상처받는일"이라고 말한다. 더 나아가 여성주의는 기존의 나와 충돌하기 때문에 세상에 대해 질문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렇다면 기존 사회의 진보진영과 여성 진영의 팽팽한 긴장감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두 가치 모두 ‘익숙하지 않고 기존 가치와 통념에 도전하는’ 태도로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말이다. 몇 해전 진행되었던 한 ‘B급 좌파’와 페미니스트들 사이의 논쟁은 어떻게 된 것일까.
한쪽에서는 ‘가부장 좌파 마초’라고 손가락질 하고, 다른 편에서는 ‘중산층 부르주아 페미니스트’라고 욕한다. 서두에 언급한 이러한 가치의 충돌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서로 ‘닮은꼴’ 사이에서 일어나는 가치투쟁이기에 내게 있어 흥미로운 현상이었고, 궁금증을 가지고 두 진영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상대적으로 많이 접해서 익숙한 진보적 입장보다 페미니즘에 취약한 나로서는 정희진이라는 ‘국가대표 페미니스트’에게 페미니즘의 입장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궁금증 이외에도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또 있다. ‘영원히’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라는 선언적 명제를 전복시켜 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여....................................................
2024-04-26 19:37:09 211.234.109.229/data/data_scrap.html 최근 수정일: 2019-11-06 15:55:18. 총퀴리수 : 3 총쿼리시간 : 0.00224 [0.00039]/[ DB:report] select count(*) AS CNT from psCart where SessNum='20240426193709608940'; [0.00047]/[ DB:report] SELECT seq FROM psRlist WHERE rpID=154776; [0.00138]/[ DB:report] SELECT * FROM psReport WHERE rpID=1547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