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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학기 역사의현장을찾아서 출석대체시험 핵심체크

다운로드: icon20162_출석_일본2_역사의현장을찾아서.pdf


목차
제1장 선덕여왕에서 김춘추까지, 권력 변동의 현장
제2장 세종의 초정 행차에 깃든 민본정신
제3장 정조의 화성 행차와 화성 신도시 건설
제4장 일본 관동대지진과 조선인 대학살의 현장을 찾아서
제5장 1894년 농민전쟁과 김개남

* 각 장별 출제예상문제 제공(해설포함) *



 
본문내용
제1부 통치와 지배의 현장

제1장 선덕여왕에서 김춘추까지, 권력 변동의 현장

1. 647년 비담의 난
가. 비담과 염종의 모반
① 647년 1월, 명활산성에서 상대등 비담(毗曇)이 “여왕이 정치를 잘할 수 없다”는 명분으로, 염종(廉宗) 등과 함께 모반을 일으켰다.
② 선덕여왕 즉위 후 차기 왕위를 노리던 반대 세력이, 선덕여왕이 김춘추(金春秋)와 김유신(金庾信)을 후원하여 세력 균형이 깨지게 되자 역전을 기도한 반란사건이다.
③ 왕군은 월성을 근거지로, 반란군은 명활산성을 근거지로 군사적 충돌을 시작했으나 10여 일이 지나도 승패가 나지 않는 등 반란군의 기세가 대단하였다.
※ 상대등(上大等) : 법흥왕 18년(531) 처음 설치된 이래 왕 다음으로 국정을 관장하는 최고 관직이자 귀족 회의체 화백(和白) 회의를 주관하며 왕권을 견제할 수 있는 자리이다.

나. 반란의 명분 - ‘여주불가론’
① 반란의 명분 ‘여주불가론(女主不可論)’은 당 태종(太宗)의 발언에서 나왔으며, 선덕여왕에게 불만을 품은 귀족 세력들은 이를 반란의 명분으로 삼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② 선덕여왕의 즉위는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으므로 왜 그 시기에 선덕이 왕위를 계승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 중략 -
2024-03-19 14:19:39 211.234.109.229/data/data_scrap.html 최근 수정일: 2019-11-06 15:55:18. 총퀴리수 : 3 총쿼리시간 : 0.00224 [0.00060]/[ DB:report] select count(*) AS CNT from psCart where SessNum='20240319141939867099'; [0.00053]/[ DB:report] SELECT seq FROM psRlist WHERE rpID=10414174; [0.00111]/[ DB:report] SELECT * FROM psReportCo WHERE rpID=10414174;